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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대담]라혁일 대한체육회 문화·환경·교육위원회 수석부위원장, “꾸준한 연구활동 펼쳐 나가겠다”

30여년간 전북체육회에서 잔뼈 굵은 체육인, ‘전북체육발전 기초 쌓아’

작성일 : 2019-09-02 17:37 작성자 : 김복산 (klan@daum.net)

 

지난달 26일 대한체육회 문화·환경·교육위원회 수석부위원장에 임명된 라혁일 위원장은 미래의 올림픽 유치를 위한 연구와 활동을 적극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라 위원장은 지난 30여년간 전북체육회에 몸담으면서 전북 체육사의 산증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전북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운동을 생활화하는데 필요한 시설과 지도자들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일 라 위원장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들어봤다(편집자주)

 

8월 26일 대한체육회 문화`환경`교육위원회 수석부위원장에 임명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전북 체육인들의 관심과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대한체육회에 17개 소위원회가 있으나 전북 체육인 중 유일하게 수석 부위원장은 최초인 것 같아 감사함을 느낍니다.

 

문화환경교육위원회 부위원장에서 수석부위원장으로 격상되셨는데,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본 위원회에서 다루는 2019년 올림픽 기념행사와 평창기념재단을 운영,하고 제31기 KOA 개최를 앞두고 추진계획에 적극적인 참여를 할 것이며, 전북도내 체육인들의 참여와 스포츠인들의 가치관을 확산하고, 미래의 올림픽 유치를 위한 연구와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여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수석부위원장님은 지난 30여 년간 전북체육회에 근무한 전북 체육사의 산증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전북체육을 이끌어오면서 도민들과 좌절과 영광을 함께 했는데, 술회가 있다면요?

 

-전 황인성 전북도지사 시절인 1974년 재경 도민들에게 5만장의 서신을 보내 전북선수단에 대한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렸습니다. 어려운 시절이라 재경 도민들은 신문배달, 넝마주이, 구두닦이, 연탄배달 등 빈민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선수단이 서울역에 도착하자 구두통과 넝마주이통을 어깨에 맨 전북 출신들이 환영 현수막을 들고 나와 선수들의 사기와 투지를 북돋아 주었으며, 각 경기장마다 깡통과 구두통을 두드리며 눈물겨운 응원을 펼쳐 선수들의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1975년 제56회 대구 전국체전에서 인천체대 재학 중인 전북도 전영인 태권도 선수가 결승에 진출하였으나 경기도 인천체대 학장이 직접 나서 불출전을 강요했습니다. 전영인 선수는 잠적, 경기도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고 전영인 선수는 기권패로 몰수 처리돼 0점으로 처리되면서 217점 차이로 안타깝게 종합 4위에 머물렀던 것이 기억납니다. 전북도 체육회는 1947년 창립된 후 자체 회관과 사무실을 마련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감수했습니다. 당시 전북도 체육회 유평수 사무국장은 1977년에 덕진동 종합경기장 위치에 있던 구 공무원 교육원이 팔복동으로 이전하게 되자, 당시 황인성 도지사에게 도체육회 무상 불하를 요청했습니다. 황 지사는 1977년 전북도와 전주시에 7천만 원씩 총 1억 4천만 원을 도 체육회에 지원, 도 체육회가 구입토록 지시하여 체육관리위원회를 구성, 공동명의를 법인 등록하도록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2005년 현 체육회관을 새 체육회관 건립을 위한 허가 신청 후 2007년 완공 예정으로 추진 중 강현욱 지사의 지사직 불출마로 공사가 중단되다가 새로 취임한 김완주 도지사가 2009년 완공으로 전북 체육인들의 숙원을 풀게 되었습니다.

 

 

체육회 재임 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성과가 있다면?

 

-1974년 제55회 전국체전 때 체전 사상 처음으로 경기도를 제치고 전무후무한 종합 2위를 차지하여 250만 도민들의 사기와 체육인들의 긍지를 드높였습니다. 당시 전북축구협회 사무장 겸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었는데 2~3위를 놓고 경기도(당시는 인천도 경기도 소속)와 점수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전국체전 폐막 전 마지막 경기로 축구 일반부 우승으로 종합 2위를 확정하여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서로 껴안고 눈물 흘렸던 그때를 기억합니다. 전북 일반부 소속 선수는 차경복, 권이운, 최재모 등 이었고, 허정무 등이 소속된 전남 일반부를 2:0으로 이기고 우승함으로써 183점 차이로 경기도를 이기고 영광의 2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전북 체육회관 건립의 기초를 닦으셨습니다. 소회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승부의 세계에서 35년 간 좌절과 영광을 함께해온 사람으로서 체육인들의 숙원 사업인 전북체육회관 건립을 꼭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간 선배들이 쌓아온 체육인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2005년 현 종합경기장 옆에 체육회관 신축을 추진했습니다. 강현욱 당시 도지사께서 승인해주셔서 신축허가와 전북개발공사와 계약 체결, 업자 선정 등이 진척되면서 도 체육회 출범 회갑이 되는 해인 200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추진했으나 강현욱 지사님의 도지사 불출마 선언으로 저는 후배들에게 처장직을 양보하고 퇴직했습니다. 그 뒤에 2009년도 김완주 지사 재임시 완공, 체육인들의 숙원 사업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체육기금이 23억이 마련되었으나 80년 전북도에서 개최된 전국체전에서 운영비로 소비하여 체육기금이 전무한 상태에서 재경 인사와 도내 사업가들의 협조로 34억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타도에 비해 너무 예산이 적어 강현욱 지사가 결심해 주셔서 전북도의회 조례를 개정, 전북도가 1년에 10억 원씩 지원하여 100억 원을 목표로 전북도가 제정토록 추진했습니다.

 

체육계에 몸담으면서 보람된 사업이나 실적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낙후된 전북 체육을 위해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실업팀 창단, 대학팀 창단, 학교체육 육성으로 전북체육 기반 조성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우석대 배구팀 2005년에 창단하여 전국대회 10회 이상 우승) 전주마라톤을 창설하여 전국 4대 메이저 대회로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나 2008년 전주 시민들의 불편 등을 이유로 해체되어 지금도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전북컬링연맹을 1999년에 창립하여 2001년 전국 최초로 아시아 태평양 선수권 대회를 유치하여 사무총장을 맡아 성공적인 대회를 마쳤습니다. 2005년 2월 세계주니어컬링대회 유치에 성공하면서 사무총장을 맡았으나 체육회 처장으로 임명되면서 후배들에게 사무총장 자리를 물려주고 조직위원으로 활동하여 성공적인 대회를 마친 이후에 세계컬링연맹 회장으로부터 공로패를 수상한 바 있습니다. 전북체고가 학교 체육의 중심인 학교 운동장이 400m 트랙과 종합체육관이 미비함에 따라 최규호 교육감 당시에 정식으로 이전할 것을 강력히 건의했습니다. 현재 소양면에 위치한 장소에 제반 시설을 갖춘 뒤 2003년 완공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전북체육고등학교로 거듭나 학교 체육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인기 종목과 기본 종목 육성을 위해서 체육중학교 신설이 필요하다는 계획도 받아들여져서 2007년 개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김승환 교육감이 시설투자, 기숙사 완공 등 많은 예산을 들여 현재는 전국에서 최고의 시설을 갖춘 체육중·고등학교가 완성된 상태입니다.

 

 

△후진 양성을 위하여 특별히 추진하고 계시는 일 또는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엘리트 체육은 초, 중, 고, 대학, 실업팀 연계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선수들의 사기와 의욕을 높이고 우수 선수 발굴과 육성이 성과를 거둘 때 꽃을 피우게 된다고 믿습니다. 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전북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운동을 생활화하는데 필요한 시설과 지도자들의 육성이 필요합니다.

 

 

전북체육을 위한 발전 방향과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2020년 1월 15일 민간인 체육회장 취임을 앞두고 있는 시점입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면서 체육인 활동이나 체육행정 경험이 있는 분들이 체육회장에 취임하는 것이 체육발전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국회에서 발의된 뜻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체육회 법인화 추진과 예산 독립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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