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납품 차질, 위약금 등 손해 10억 추정… 농장주 발만 ‘동동’
작성일 : 2019-06-05 17:55 작성자 : 김경모 (kimkm@klan.kr)
전북 순창지역에서 13년 째 배추를 키우고 있는 박 씨. 지금쯤이면 봄배추 수확을 마친 후, 밭을 헤치고 메주콩 파종 준비에 한창이어야 할 때다. 그런데 이상하다.
멀리서 보이는 9만 여 평에 달하는 그의 배추밭이 노랗게 물들어있다. 영락없는 유채꽃밭이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모두 배추꽃이었다.
“그나마 농약을 안 먹고 맥주를 마셔서 천만다행이네”
답답한 마음에 대낮부터 캔맥주를 들이키는 박 씨를 보고 지인이 위로 섞인 농담을 던졌다.
박 씨는 올 해 새로 계약을 맺은 육묘장에서 가져온 묘종이 냉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육모장에서 온도조절에 실패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는 주장이다. 종전까지 거래해왔던 곳의 다른 배추들은 생육이 좋기 때문이다.
그는 해마다 봄배추를 재배해 대만 수출과 국내업체, 군납 등으로 보내왔다. 이번에 납품 차질로 인한 위약금 등 손해금액은 10억 원에 달한다.
그는 4~5만평 규모였던 배추밭을 올해 9만 평으로 늘렸다. 종전 거래처에서 물량을 다 소화하기 어렵게 되자 정읍시에 위치한 한 농업사와 새로 계약을 맺고 지난 3월 하순 묘종 7000판 90만 개 분량을 열흘에 걸쳐 받아왔다.
박 씨는 “나름대로 곳곳에 신뢰관계도 구축해오고 주문량도 늘며 이제는 제법 ‘농사를 잘한다’는 자신이 있었는데 육묘장을 바꾼 선택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나중에 알고 보니 농업사가 진안과 부안에 있는 육묘장 두 곳에 하청을 줬더라”며 “농업사의 관리소홀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배추 묘종은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면 식물의 꽃줄기가 자라나는 ‘추대’현상이 발생한다. 박 씨는 “육묘장에서 지난 2월 15일경 파종을 했을텐데 묘종이 30일에서 35일 가량 있던 그 곳의 온도가 영하로 떨어졌을 때 과연 15도 이상으로 난방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여러 정황과 경험에 비춰봤을 때 육묘장에서 냉해를 입었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 이라며 “아무래도 떡잎이 발아가 되고, 잎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추대가 발생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육묘장에서 묘종을 받아올 당시는 이 같은 문제를 확인할 길이 없었는지를 그에게 묻자, “어떤 전문가도 30일 키운 모판에 있는 육묘만을 보고 가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냉해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를 육안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잘라 말했다.
박 씨는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당장의 배추 손해는 차치하더라도 다른 농가들에게 임차한 땅에 하루 빨리 콩을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배추 자리를 다 파헤쳐서 폐기처분해야 그 자리에 그대로 콩을 심을 수 있는데 당장 경비와 인력을 어디서 구해야 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콩 농사까지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당국의 반응은 자못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순창군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아직 원인을 정확히 알 수없는 상태에서 뭐라 언급하기 어렵다"면서 "이렇게 넓은 면적에 배추꽃이 피는 것은 드문 사례"라고 밝혔다.
아울러 메주콩 파종시기에 대해서는 “오는 10일이 가장 적기이기는 하지만, 20일 이후에 콩을 심게 되면 적심작업을 하지 않아도 돼 기계수확시 용이한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파종이 좀 늦어지더라도 일장일단이 있다는 설명이다.
박 씨는 순창군 측이 간접적으로나마 긴급지원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했지만 아직 실질적이고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편, 농촌진흥청은 곧 현장에 기술지원단을 보내 시료를 채취하는 등 원인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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