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巧棄利와 易簡
세월은 어김없어 또 봄이다. 아직은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추위이지만 멀리 솟는 아지랑이와 간간이 스며드는 온풍이 그래도 봄임을 느끼게 한다.
새해 첫 출발을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개월하고도 며칠이 지났다. 유수(流水)- 쏜 살 같은 세월이란 말이 너무 실감난다. 그와 함께 새 출발의 의미도 그 짧은 사이 많이 퇴색했을 터다. 그도 그럴 것이 새해 맞아 모두들 새 각오와 새 계획으로 ‘희망의 돛’을 올린 지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는데도 성과는커녕 뒤틀림과 어긋남이 곳곳에서 보이니 얼마쯤은 제외하고는 거의 새해 기대가 무너졌을 것이기에 말이다.
사실 1년의 성과는 올해가 완전히 지나봐야 알겠지만 절반쯤은 성공하고 또 절반쯤은 실패할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아니 어쩌면 실패 쪽이 훨씬 더 많을 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 삶의 양태가 구조적으로 ‘실패’를 자초할 수밖에 없게끔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는 인간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고도의 기술과학문명과 인간의 무한욕망에 기초한 천박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우리사회는 복잡다교-다양성(複雜多巧-多樣性)을 갖게 만들어 인생에서 정작 필요한 인간의 순수성 등 내면적 가치 추구의 여지를 좁혀 놓을 대로 좁혀 놓았다.
생명을 복제하고 우주의 신비를 벗겨갈 정도의 그 인지발달의 역기능이 오히려 더 우려스럽고, 천박 자본주의는 ‘물질’을 가치 기준으로 만들었고 더 없는 물질적 풍요로움은 부의 왜곡 및 편재를 불러 더 이상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물질’을 향해 달려가고 달려오는 사회를 만들었다. 그 사회에서 우리는 끝없는 욕망을 자극받아 오로지 ‘더 많은 소유’와 환락과 타락을 향해 줄달음질치는 ‘불나방이’로 살아 왔다. 서로 속이고 죽이고 오로지 나만의 욕망 충족을 위한 그 광기의 사회에서 우리는 ‘삶의 여유’를 조금치도 갖지 못한 채, 계속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실패의 확률이 높다고 말한 것이다.
옛 가르침 중에 ‘절교기리 도적무유(絶巧棄利 盜賊無有)’란 말이 있다. “교사스러움을 끊고 이익을 버려야 만이 안팎의 도적이 없어질 것”이란 뜻으로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인생에서 교사스러운 문명의 해로움과 탐욕을 경계한 절대적 가치를 지닌 교훈이다. 교리(巧利)를 끊고 버려라. 이는 편함과 나태를 몰고 온 고도문명과 끝없는 탐욕의 노예로 전락한, 그야말로 교리에 집착한 채, 자신을 잊고 사는 현대인에게 매우 값진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이간이천하지리득의 천하지리득이성위호기중의(易簡而天下之理得矣, 天下之理得而成位乎其中矣)란 말도 있다. 주역 계사전 상편에 나오는 말로 “모든 일을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추구하는 가운데 천하의 모든 이치가 터득된다. 천하의 이치가 터득될 때 인간이 서야 할 바른 위치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다. 행동반경은 각종 규제에 얽히고 섥혀있어 제약이 그지없이 많고, 쉴새없이 쏟아내는 각종 정보와 광고는 모두를 세뇌시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또, 고도의 기술향상으로 하다못해 TV리모콘의 기능 조차도 모두 소화해 내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고 현란한 실정이다. 주역의 가르침대로 모든 진리는 이간(易簡) 즉 ‘쉽고 간단한’ 가운데 있는데, 우리는 도리어 매우 어렵고 복잡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라도 아직 늦지 않았으니 올해 우리 모두의 계획들이 교리(巧利)에 기초했고 이간(易簡)을 멀리하지나 않았는지, 되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짚어봤다. 매사 교리에 기초했고 이간을 외면했다면 설사 훗날 그 계획이 성공했더라도 그 끝은 허망과 후회일 것이기에.
그리고 뭣보다 이 지방시대를 이Rm는 지방 정치인들 삶의 태도가 절교기리(絶巧棄利)와 이간(易簡)에 그 바탕을 둔다면 우리사회가 얼마나 맑아질까 새삼 기대해 본다.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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